“내 신앙의 경계선과 초월” 조광봉교수님 (20120327)
본문
< 서 론 >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신앙의 경계선이 생깁니다. 이러한 신앙의 경계선은 자신만의 신앙의 스타일로 개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신앙의 경계선이 다양한 형태의 하나님의 모습을 만나는 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는 자신의 신앙의 스타일을 살펴보고 그 신앙의 경계선을 초월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2012학년도에 학교에 입학하신 분들의 큰 특징을 발견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으로 신앙심이 깊다는 점입니다. 마음도 착하시고 영적인 역사도 좋아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맺는 데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십니다. 마치 우리 하나님께서 일관된 특성을 가지신 분들을 한꺼번에 불러 주신 것 같습니다.
마음이 착하고 순수하게 되면 그 만큼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의 성향을 영향 받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내면의 세계와 구분을 못할 경우에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청평에 모이신 것도 이러한 신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망이 이유가 되신 경우도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신앙이 깊고 한편으로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간구하고 찾으시는 분들이 이렇게 학교에 오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학교를 사랑하시고 찾아주신 여러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 신앙의 경계선과 초월”이라는 주제로 함께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훈독본문 >
마음은 영원히 여러분의 선생입니다. 어려울 때에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목욕 재계하고 금식하고 마음에 물어 보라구요.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내 자체를 부정하는 자리로 들어가 보라구요. 그러면 반드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따로 있지 않아요. 여러분의 마음이 선생님입니다. 알겠어요? 마음은 작은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깨끗이 키우라구요. 마음을 이렇게 키우게 되면, 점 점 자라 가지고 이 모든 세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안이에요. 나라가 어떻게 되고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 다 보이는 것입니다.(말씀선집 227, p. 274)
< 본 론 >
본문의 말씀은 마음이 나의 스승으로 어려울 때 깨끗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정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마음이 작은 하나님이 되어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더욱 키우게 되면 세상을 초월하는 천리안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첫째, 마음을 깨끗이 하라
둘째, 나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가르침을 구하라
셋째, 가르침을 준 마음을 작은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더욱 키워라
넷째, 마음이 클수록 초월의 눈을 갖게 되고 더욱 넓고 크게 볼 수 있게 된다.
1. 우선 마음이 깨끗한 신입생 및 참교원 학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청심(淸心)에 맞는 학생들이 오신 것 같습니다.
청심(淸心)이라는 의미는 맑고 깨끗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청심신학 대학원은 통일신학 중에서 맑고 깨끗한 마음을 드러내는 신학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마태복음의 말씀을 찾아보면 “마음이 깨끗하고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서의 내용은 참부모님의 말씀과 연관지어 볼 때 한 마디 말씀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 들어가야”라는 조건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2. 1 왜 자기 부정이 중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신앙적으로 깨끗하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교만이 될 수 있고 그에 따라 타인의 신앙을 평가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신앙의 경계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깨끗하다고 인정하게 되고 이를 중시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경계선을 갖게 됩니다.
첫째,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지향하는 것에 맹신하게 됩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의미는 타락성이나 죄악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하지만 깨끗해지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은 조건이고 수단에 불과하고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데 있습니다. 이를 망각하게 되면 신앙의 경계선에 갇히게 됩니다.
둘째, 자신이 신앙심이 깊고 아벨적 기준에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타인을 자신의 신앙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신앙을 잘하고 정성을 많이 드릴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평가하고 불만을 갖게 되며 그것을 신앙심이 부족한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불만의식을 강하게 갖게 됩니다. 잘못하게 되면 자신도 주변의 흐름에 따라 변모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불만이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셋째, 타인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잘 듣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고수하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방식대로 신앙합니다. 타인과의 타협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삶의 방식을 변혁하거나 새롭게 설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만족이 있을 시에는 괜찮지만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을 경우에는 변화가 필요한데 이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바꾸지 못합니다. 변화하거나 변혁하지 못해 고통스럽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경계선을 넘으려면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한 다음에 자신을 부정해야 합니다. 그것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너머에 있는 하나님에 100% 몰입하겠다는 자세로 자신을 부정해야 합니다.
2.2 부정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면 깨끗하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시니까 내가 보이지 않고 또 다른 작은 하나님이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첫째, 자신을 순수하게 하는데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이 자신의 삶 안에 드러나게 하면 됩니다. 인간 스스로 순수해지고 변화되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절대적으로 순수해진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부족하고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관심을 키워서 이러한 역사가 삶 안에서 드러나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신앙심 좋은 것에 만족하고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신앙심을 키우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조건은 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체적으로 일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신앙이 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은혜 받고 하나님과 일치된 나를 생각하는데 머물지 말고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창의적 삶을 열어가면서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인간의 삶의 중요한 두 요소는 일치와 발전입니다. 심정적으로 하나 되는 삶도 필요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실적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변화의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작은 하나님인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내 마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부정한 다음에 나를 가르쳐주는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참부모님은 이러한 마음을 작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하나님은 원리강론에 따르면 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의 기능을 더욱 키워서 본심이 되게 해야 합니다. 양심에 절대 복종하는 과정을 키워서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본심이 작용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인 양심이 내 본심이 되게 하고 내 본심이 하나님의 가르침이 되게 해야 합니다.
작은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생명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맺었던 경험을 키우고 은혜 받는 내용을 상기하고 더욱 발전시켜서 하나님의 마음의 바다에 빠져야 합니다. 그것을 자신이 살아있다는 생명력으로 느껴야 합니다.
4. 초월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초월의 눈은 하나님의 눈입니다. 나의 눈에서 식구의 눈으로 세상으로 눈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눈으로 바꿔가는 것이 초월입니다. 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초월의 눈입니다. 나를 초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의 시각,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우에는 결코 초월할 수 없습니다. 내 신앙의 경계선에 머물면서 나를 초월한다고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결코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넘으려면 내 신앙의 경계선을 봐야 합니다. 그 경계선은 내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나가 아닌 너의 눈, 타인의 눈,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경계선이 보입니다.
내가 내 세계에 집착되어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초월의 눈을 가지라면 내가 하나님을 마주 봐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보는 방향과 같은 방향에서 세상을 봐야 합니다. 그 방향은 하나님을 등지고 바라보는 방향입니다. 내가 부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바라보는 중생의 세상을 나도 같이 보는 이치입니다.
특히 지도자일수록 하나님을 마주 보지 말고 식구를 향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 결 론 >
이러한 관점은 자신의 신앙적 특성에 따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활동을 많이 하는 자도 그 자체가 신앙의 경계선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운 실적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얻게 해준 실적을 키워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활동을 하는 초월적 활동이 필요합니다.
신학공부를 많이 하는 자도 그 자체가 신앙의 경계선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신학적 지식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신학,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하는 신학을 발전시켜서 하나님이 원하는 초월적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유 방식처럼 자신의 신앙적 장점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부정해보고 하나님이 원하는 나의 신앙적 장점으로 자리잡게 하여 항상 자신을 부정할 수 있으며 초월이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작은 하나님으로 나를 키워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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