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12-27 (20121120) "하나님 어머니" 조광봉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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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독 본문 > 본래 지상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누가 먼저 죽겠어요? 아들딸이 먼저 죽겠어요, 부모가 먼저 죽겠어요?「부모요.」그러면 아담 해 와가 천상천국에 올라가면 뭣이 되느냐? 그들이 하나님 자리에 서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실체를 쓴, 아담 해와 몸으로 변화된 영적인 주체적 주인 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어머니가 있게 된다는 말이에요. 어머니 아버지가 없이 생명체가 나올 수 있어요? 그러한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아담 해와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갈라져 나와 가지고 하나돼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를 통해도 그렇고, 아버지를 통해도 하늘 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말이 된다구요. 그렇게 되었더라면 저 영계의 천상천국의 주인공이 누구냐? 실체를 쓰고 살던 내 어머니 아버지가 저 나라에 가서 영원한 천국의 왕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090-p.192) 영육 일체 사랑을 중심삼고 참사랑하는 데 영육 참사랑, 영육 참생명, 영육 참혈통에 일치될 수 있는 씨가 나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 것이자 하나님 어머니 것이고, 하나님 어머니 아버지 것인데,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동참한 자가 나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동참한 자리의 씨예요. 그렇게 태어났지요? 어머니가 사랑하는, 좋아하는 클라이맥스에서 펑 터졌는데 다 날아갔지만 씨 되는 여러분이 남아 가지고 태어난 거예요. 그래, 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동참자인데, 어머니 아버지는 사랑을 심어 가지고 열매로서 남겼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부활시켜야 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429-0034, 2003.12.23)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마음적 왕의 세계, 아담은 보이는 왕의 세계, 두 세계가 비로소 결혼할 때, 아담이 결혼만 했더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마음의 주인의 자리에 들어가고, 아담은 그 마음의 몸이 되어서 하나 되었을 것입니다. 또 여자는 그 상대적 성상으로서 마음과 하나님 어머니와 하나 되고 하나님 어머니 실체와 하나된 것이 자리에서 씨를 거둬야 되는 거예요. 그게 3대입니다. 이게 틀어졌어요. 그게 왜 틀어졌느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을 때 온 하늘땅에 이상적 천국 외적 내적 세계를 구상 다 해 놓고 요것만 갖다 맞추면 하나님도 왕이 되고, 아담도 하나님의 몸의 왕이 되는 거예요. 내적 왕, 외적 왕이 되고, 그다음에는 아내 되는 아내도 내적 왕, 외적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둘이, 남자 여자가 합할 때는 하늘땅이 합하는 것이요, 외적으로는 평면적 세상이 합하는 것이요, 거기서 출발하여 아들딸을 중심삼고 퍼져 나가게 돼 있어요, 3대 이후에.(425-0185. 2003.11.12) 1.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왔습니다. 참아버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이 신앙하면서 자연스럽게 불러보는 이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피조세계에 대해서는 남성격 주체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도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의 모습도 계신 부모하나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녀들이 어떠한 모습을 뵙고 싶으냐에 따라 아버지의 모습도 부를 수 있고 어머니의 모습도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아담을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해와를 통한 하나님 어머니의 모습을 드러내셔서 자녀를 통해서 불려지고 싶으셨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먼저 어머니의 사랑을 접합니다. 어머니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자랄 정도입니다. 하지만 성장하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책임감과 묵묵히 가정을 돌보시고 모습을 통해서 아버지의 존재를 기억하게 됩니다. 하지만 통일교의 모습에서는 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신 참아버님에 의해서 모든 것이 출발했고 환경권이 만들어졌으며 통일교의 모습도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모습이 더 크게 기억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의 모습은 통일교 식구들에게는 가까에 계셨지만 익숙한 모습은 아니셨습니다. 참아버님의 성화는 충격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참어머님을 통한 하나님 어머니의 모습을 더 자주 불러봐야 하는 상황을 주어지게 했습니다. 오늘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주제는 “하나님 어머니”입니다. 하나님 부모의 모습 중에서 하나님 어머니도 함께 생각해보고 느껴보고자 이런 제목을 정해봤습니다. 함께 생각해보면서 은혜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동안 참아버님을 통해 경험했던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여러 모습으로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보통 아버지는 무섭기도 하고 엄격하기도 하십니다. 말씀의 기준을 선포하시고 그 기준 내에서 이끄시며 생활하셨기 때문에 남모르는 어려움도 계셨을 것입니다. 참아버님은 개척자셨습니다. 혁명가이시기도 했으며,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끄시는 주인이고 스승이고 부모이셨습니다. 참된 주체이셨으며 세상 모든 것을 구원하시며 이끄시는 아버지이셨습니다. 결국 참아버님은 인간이 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종합하고 대표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통일교 내부의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선배들은 신앙을 결심하고 나오는 것이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버리고 잊고 끊고 나오는 투사와 같았습니다. 의식주부터 모든 것을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자립하고 독립적으로 살아와야 했습니다. 이처럼 통일교는 어려웠고 힘들었으며 그래도 꿋꿋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축복받는 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목숨 바쳐서 뜻을 위해 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발전하고 대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또한 2세들이 늘어나고 정착의 시대가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참아버님의 선포와 의식은 그 중요성을 알지만 그 내면의 세부적인 의미와 뜻은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당신의 생애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참으로 참아버님은 지상생활을 너무 바쁘게 급하게 중단 없이 보내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정착과 천일국시대를 열어가는 내부의 현실적 과제도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내부에서 일하면서 이끄시는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에 온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면서 자연스럽게 참어머님의 역할이 증대되고 드러나면 좋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갑자기 오게 되었습니다. 참아버님의 갑작스런 성화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외적인 변화는 내적인 준비가 될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하나 하나 준비하면서 통일교회를 참아버님의 뜻에 따르면서 그 열매를 참어머님을 통해서 열어야 하는 시대를 앞두고 있는 것입니다. 2. 참아버님을 대하는 눈으로 참어머님을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우선 우리들은 관성적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참아버지를 바라봤던 눈으로 참어머님을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참아버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내려주셨던 섭리적 책임을 자녀인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면서 그러한 승리적 결실을 드러내면서 참어머님께서 자녀들을 믿고 든든해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할 것입니다. 참아버님은 새로운 통일교를 세우셨고 말씀을 찾으셨으며 그 말씀대로 사시려고 노력했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또한 이 땅에 천일국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서 세계적인 섭리를 진행하시며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셨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엄하셨으며, 호통을 치기도 하셨고,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초인적인 일상생활로, 누구보다 앞장서시고 고생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참아버님 앞에 어떠한 면이나 삶의 태도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참어머님의 삶은 달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의 삶보다는 참아버님의 절대적인 대상의 삶을 사셨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절대신앙, 절대복종, 절대사랑의 기준 하에서 참아버님을 대하셨고 일생 숨죽이며 조용히 사셔야 했습니다. 어머님 고유의 성품과 삶이 드러나기 보다는 참아버님의 영향력 하에서 조용히 앉아계시면서 내조하는 입장에 계셨습니다. 식구들은 잘 모릅니다. 참어머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잘 모릅니다. 그저 아버님 말씀하시는데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계신 분이셨으며 엷은 미소로 화답하시는 고운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70이 넘으셨고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신 현 시점의 참어머님의 모습은 어머니 고유의 모습보다는 참아버님의 모습이 함께 드러나실 수 있는 입장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어머님을 대하실 때 참아버님의 기준에서 바라보고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갑자기 바꾸어서 다소곳하고 여성적인 이미지로 참어머님을 바라봐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참어머님의 모습은 참아버님의 삶을 절대대상의 입장에서 사셨고 그러한 토대 위에 무거운 메시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신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또 다른 상황이 있습니다. 그것은 섭리적 진전입니다. 참어머님은 혼자의 삶이 아닙니다. 참아버님의 삶을 함께 사셔야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 하나님 어머니의 모습의 삶도 함께 사셔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천지인 참부모님의 삶을 참어머님이 대표해서 사셔야 하는 입장이십니다. 인간은 남자의 모습과 여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자나 여자는 마음과 몸이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서 여러 상황에 대처하면서 살아가는데 그 모습이 남성의 일면을 띤 모습이나 여성의 일면을 띤 모습으로 대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지인 참부모님을 대표해서 참어머님께서 살아가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부모의 모습, 참아버님의 모습이 내재되어 참어머님의 여성의 성을 드러내면서 외부에 나타나는 대표성을 띤 모습으로 살아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어머님을 통해서 신앙하는 우리들은 하나님 어머니의 모습을 더 찾게 되고 기억하면서 이미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부모의 모습에서 그 동안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 상대적으로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찾고 싶은 균형을 추구하는 관점과 같을 것입니다. 3. 하나님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야 하나님 어머니의 모습을 찾고 싶다고 해서 참어머님을 억지로 부각하거나 내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어머님은 드러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심정적으로 공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어머님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오히려 심정적으로 내적으로 더 깊이 생각하면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어머니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일지 쉽게 짐작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독교를 통해 성신의 하나님의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습니다. 성신의 하나님은 결혼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이셨습니다. 그래도 성신의 하나님은 많은 인류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인류를 품고 용서했으며 많은 사랑을 베풀고 돌보아주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자의 모습이 없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불같고 엄격하고 마치 심판 할 것 같은 호통도 있으셨으며 그렇게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기독교의 역사가 있게 했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을 통해서 기존의 의식을 바꾸고 변화하면서까지 새롭게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맞게 준비하는 고통도 감내했습니다. 현재의 기독교의 모습은 한마디로 예수님의 남성적 사나이의 모습의 역사를 거쳐서 성신의 여성적 아가씨의 모습으로의 전환하는 역사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통일교의 역사는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를 모두 포함하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아버님의 어릴적 청소년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고 메시아의 자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에서 갖은 핍박과 고통을 참아가며 말씀을 정립하고 재림주님의 모습을 갖춘 신랑의 모습으로 참어머님을 만나 신혼부부의 모습에서 세계적인 자녀를 갖고 공산과 민주의 갈라진 가인과 아벨의 역사를 극복하는 노력을 통해서 참부모의 모습으로 사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자녀들이 통일교의 중심 지도자가 되고 뒤에서 이끌어주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거쳐서 성화하시게 되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제자들을 통해서 받들고 따라오는 역사를 했기 때문에 중세의 암흑기도 맞이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어 왔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는 나은 입장에서 통일교는 섭리역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참아버님의 심정과 섭리의 내용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봤던 부부의 모습으로 부모의 모습으로 조부모의 모습으로 사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여기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참어머님은 참아버님 주도로 생활하시다보니 모든 면에서 대상의 의식을 가지고 사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절대 주체의 입장에서 살아가셔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것이며 외부에서도 이를 기다려줄지가 걱정이 됩니다. 참아버님이 진행해왔던 섭리적 시각으로 참어머님을 볼 수 있습니다. 참아버님이 어머님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치 참아버님께서 진행해 왔던 섭리가 중단되고 사라질 수 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교회의식과 전통이 달라지고 변화를 겪게 되면서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제는 장자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왔던 통일가의 선배들의 역할이 필요한 때입니다. 참아버님의 역할을 장자가 대신하면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책임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서 참어머님은 믿음을 가지게 되고 짐을 더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미리 준비하신 하나님 어머니의 사랑 하나님은 하나님 어머니의 역사를 미리 아시고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이 청평역사입니다. 참어머님의 자녀이신 천총관 흥진님과 참어머님의 친정어머니이신 대모님의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통일가의 식구들은 훈모님과 마음을 맞추어 식구들을 대표하는 입장으로 청평역사를 이끌어왔기 때문입니다. 흥진님의 주요 관심사는 참아버님의 전통을 지키고 생명의 씨인 2세들이 전통에 따라 잘 자라고 참부모님처럼 성장하는 것입니다. 대모님의 관심은 땅에 대한 걱정입니다. 통일가 식구들이 악령 때문에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덜어주고 싶고 행복한 생활을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훈모님은 두 분의 뜻을 잘 받들어 구체적으로 마음이 되고 몸이 되어 이 땅에 실천하면서 성과를 내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참어머님의 제 1 걱정은 자식에 대한 것입니다. 참자녀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참아버님의 뜻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통일가 2세들이 세상을 이겨내고 경쟁력을 가지고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참어머님의 제 2 걱정은 식구들이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겨울이 오게 되면 먹을 것 걱정, 난방 걱정, 건강에 대한 걱정 등 식구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걱정의 출발에서 참어머님은 먼저 2세 교육으로 사관학교를 출발하셨고, 통일가 식구들이 우선 영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도록 예배를 직접 주관하시면서 초창기 교회로 돌아가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중단없는 전진을 강조하시면서 하나님이 이룩하고자 하셨던 근본적인 뜻을 이루고자 하는 책임감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어머님의 궁극적 걱정이십니다. 하나님, 참아버님과 참자녀, 2세, 통일가 식구들이 지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계에서도 영원히 한 가족이 되어서 어려움 없이 하나 되어 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어머니의 사랑을 말로 알 수 없습니다. 느낌으로 알아야 합니다. 미리 마음을 읽고 그렇게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 어머니는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자세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섬세하게 주변을 배려하고 챙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어머니는 큰 소리 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서로 논리적으로 따지고 서로 잘했다고 싸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오히려 양보하고 참으면서 위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 어머니는 피부에 와 닿는 것부터 관심을 가지십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사는 것, 건강, 그 다음에 말씀, 뜻, 하나님의 나라 순서입니다. 하나님 어머니는 낭만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주변에서 기쁘고 행복하고 노래하고 어울리고 즐거워하고 함께 여행하면서 멋지게 살아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천진난만하게 행복하면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 어머니는 가슴으로 다가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짓없이 사실대로 진실되게 가슴으로 다가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어머니를 부르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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