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평화운동 - 학술운동2 (위인규 교수)
본문
[평화를 기반을 다지는 학술사상운동2]
2) 세계평화교수협의회(Professors World Peace Academy; PWPA)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술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교수들이 학문분야를 초월하여 통섭적인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특히 평화의 문제는 국가나 지역을 초월한 상호협력과 전공을 초월한 공동연구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이를 위해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세계평화교수협의회(PWPA, 이하 교수협의회)’를 창설하였다.
‘교수협의회’는 한국과 일본의 대학교수 168명이 참석한 가운데 1973년 5월 6일 한국 서울에서 창설되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교수협의회’는 10년 동안 100여 개국으로 확장되어 지부가 설치되었고 수백여 차례의 회의 개최와 수많은 서적과 출판물을 제작 발행하였다. 1983년에는 세계대회를 개최하면서 국제적 단체로 발전하였다. 제1회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에 참가한 학자들은 역사와 문화, 국경과 인종의 담을 넘어서서 신의에 따른 이상적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참부모님과 더불어 노력할 것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이후 교수협의회는 ICUS의 ‘절대가치’에 대한 고찰을 세계적‧정치적‧사회적‧문화적 차원으로 확장하였다. 그에 따라 1985년 ‘소련제국의 몰락’, 1987년 ‘중국의 미래’, 1989년 ‘자유 민주주의 미래’, 1992년 ‘21세기의 사회’, 1995년 ‘가정의 미래’, 그리고 1997년에는 ‘인류의 특성과 본질’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가운데 소련의 종말을 다룬 제2차 회의는 가장 주목을 끌었다.
1984년 참아버님은 세계평화교수협의회 회장으로 있던 모턴 카플란(Morton Kaplan) 박사에게 ‘소련제국의 붕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였다. 당시는 냉전 시대로 소련이 미국과 함께 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있을 때였다. 이에 카플란 박사를 비롯한 저명한 소련 연구의 전문가들은 그와 같은 회의 주제를 반대하였지만, 문 총재의 강력한 제안에 따라 결국 ‘소련제국의 붕괴’라는 주제로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렇게 개최된 ‘교수협의회’의 두 번째 국제회의의 주제는 ‘소련제국의 몰락: 소련 이후의 세계(Post-Soviet World)로의 이행에 대한 전망’이었다. 이 회의는 1985년 8월 13일에서 17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회의는 12개 분과로 나뉘어 진행되었고 90여 개의 논문이 제출되었으며, 세계 100여 개국에서 참가한 학자들이 회의의 질적 수준을 더욱 높여 주었다.
회의를 주재한 카플란 박사는 “문선명 총재가 5년 안에 소련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예측했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라며 “초청받은 많은 사람들이 회의의 주제를 문제 삼아 참석을 거절했을 때도 문 총재는 해당 주제를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아울러 1985년에는 ‘동유럽의 소련 철수’라는 주제를 제시했으며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여 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것이 동유럽의 자유화에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제2차 PWPA 세계대회에서 공산주의 종언 선언 (1985.8.13, 스위스 제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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