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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자살할 권리와 악의 허용 문제(정시구 교수)

작성일 23-04-16 19:09   /   조회 17,223

본문


자살할 권리와 악의 허용 문제


칸트는 자살이 도덕적으로 정당화 되지 않음과 동시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


“자신의 생을 끊는 권한이 자기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머뭇거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다가오는 벌로부터 항상 주저함 없이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살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범죄에 따르는 벌에 대한 공포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칸트의 논의에 있어 중요한 핵심은 '자살의 권리 획득'과 '타인에 대한 부정의 허용'이라는 관계성의 문제이다. 즉, 칸트는 자살이 허용되는 것에서 필연적으로 타인에 대해 부정을 저지르는 것도 허용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거의 문제점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지적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칸트의 이 논의는 현세적 삶의 회피와 함께 현세와 내세의 단절, 즉 이원론적 구조로서 생의 이해를 기반으로 구조화하고 있다는 것.


둘째, 칸트의 이 논의에 따르면 ‘자살’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살할 각오를 하는 것으로 인해 사회에 초래되는 악의 귀결이 문제이다. 즉, 자살금지의 기초가 되는 근본 토대로서의 도덕적 결단은 행위에서 예기될 수 있는 벌과 응보에 좌우된다는 생각이다.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간과 그 존엄성


칸트에 의하면 도덕적 존재이며 그 자체로서 스스로 목적인 인간은 한낱 ‘수단’으로서가 아닌 반드시 ‘목적’으로서 대해야 한다는 요청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에 위배되는 상황으로서 자살의 문제를 제기하며 인간 혹은 인간의 생명을 목적이 아닌 수단화하고 있는 자살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살자는 자신을 물건으로 취급하며, 그와 동시에 자신의 도덕적 인격을 파괴하 기 때문에, 자살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처분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눈앞에 다가오는 벌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단순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권리를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은 물건이 아니고, 그러니까 한낱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모든 행위에 있어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구약성서 욥기서 3장 1-16절을 살펴보면 욥은 고통 속에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있고, 

예레미야서 15장 10절에서 예레미야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라며 자신의 출생을 저주함. 


또한 전도서 2장 11절에서는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기술. 


물론 제한적으로 발취하여 제시한 내용이긴 하나 이렇 듯 성서는 인간의 번뇌와 삶의 자리에서 파생되는 고통의 문제에 결코 무지하거나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그러니까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인생에 대하여 절망을 하거나 포기하 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 는 줄을 내가 알았다.”(전도서 3장 12절)고 말함. 성서에서는 사는 것 의 소중함은 자명한 것이며, 죽이는 것과 죽는 것은 극단적인 죄로 여김.


칸트 식으로 구태여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살 권리가 있으며, 또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라고 성서는 기독교적 생명관에 뿌리를 두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따라서 비록 그 목적과 의미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사는 것은 우선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며, 선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이와 같이 자살은 기독교 신학적 이해에 있어서도 칸트의 이해 방식과 마찬가지로 정당화 될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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