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악을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두는가? (오희일 교수)
본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악이 존재한다. 매일 뉴스에서, 또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우리는 끊임없이 악을 접하고 있다. 폭력, 살인, 사기, 속임수, 배신, 거짓말, 차별, 불평등, 불륜, 성범죄, 전쟁, 기아, 환경오염 등,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악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나쁜 일들이 모두 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행위는 명백한 악이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악에 포함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도대체 왜 이토록 많은 악이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은 왜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그 선택은 크게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로 나뉜다. 대부분의 인간이 어떤 때는 선을 선택하고 또 어떤 때는 악을 선택한다. 왜 그럴까? 인간은 때에 따라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항상 선만을 선택하는 존재일 수 없는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늘 선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악하기도 해야 인간답지. 만약 전혀 악하지 않고 선하기만 하다면 그건 신이지, 그게 인간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인간은 본래 그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해야만 하는 존재인가? 신은 인간이 그런 존재이기를 의도하였을까?
아무래도 그러진 않았을 것 같다. 신이 절대적으로 선하다면, 그가 창조한 인간도 원칙적으로 선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신의 계획 속에서의 인간은 악하지 않고 선하기만 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악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누가 악을 만들었을까? 악도 신이 창조한 것일까?
신은 악을 창조하지 않았다. 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며, 악을 행하는 주체는 분명히 신이 아닌 인간이다. 하지만 신이 선하고, 신이 창조한 인간도 선한 존재라면, 선한 인간이 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된 한 사건 때문이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악은 모두 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에서 ‘타락’이라고 불리는, 구약성경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신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미리 경고하였으나, 그들은 이를 어기고 그 열매를 따먹고 말았다.
만약에 이 타락 사건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신은 왜 인간의 타락을 방관하였을까? 왜 그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막지 못하였을까? 막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막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막고 싶었지만 막을 수 없었던 것일까?
우리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는 이유는 신이 전지전능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신이 무조건 전지전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하지 않으면 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전지전능이란 무슨 뜻인가? 그 문자적 의미를 보면, ‘전지(全知)’는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이고, ‘전능(全能)’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신이 전지전능하다 함은 그가 모르는 것이 없고,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뜻이다.
신의 전지함이란 무엇일까?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신, 물건을 훔친 사람이 나인 줄 아무도 모르는데 유일하게 알고 있는 신, 축구 경기를 치르기 전부터 그 승패를 알고 있는 신, 이런 것들이 신의 전지함일까?
신의 전능함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신이 전능하다면, 물이 담긴 컵을 거꾸로 뒤집었을 때 물이 쏟아지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포유류나 파충류가 새처럼 하늘을 날게 할 수 있을까?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모든 자연과학의 법칙은 사실상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지구의 중력도 신이 만든 법칙인데, 만약 컵이 거꾸로 뒤집혀도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면, 신이 만든 중력의 법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하늘을 나는 능력은 날개가 있는 조류에게만 신이 부여한 특권인데, 만약 다른 동물들도 날개 없이 하늘을 난다면, 이는 신이 창조한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의 몸은 외부로부터 큰 충격을 받으면 생명이 정지되고, 한 번 정지된 생명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도 신이 만든 원칙이다. 그런데 만약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면, 이는 그 원칙을 무효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흔히 이런 상황을 가리켜 두 글자로 ‘모순’이라고 표현한다. ‘모(矛)’는 창이고, ‘순(盾)’은 방패다. 어떤 사람이 “내 창은 날카로워서 그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내 방패는 견고해서 그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쩌면 신이 타락을 막지 못한 이유도 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신은 왜 인간의 타락을 막지 못하였을까? 그러지 못하게 하는 신의 창조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그냥 무작정 만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창조원칙에 따라 만들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중요한 창조원칙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의 책임분담’이다.
인간은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목적 그 자체였다. 신은 처음부터 인간을 염두에 두고 다른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 신은 절대적으로 인간을 필요로 하였고, 그 절대적 필요성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였다. 창조에 대한 신의 구상 속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주인공이다. 인간 외의 모든 생명체와 자연세계는 들러리일 뿐이며, 인간이 생을 영위하기 위한 울타리이자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신은 인간이 자연세계를 사랑으로 잘 주관하기를 소망하였다.
그렇다면 인간과 인간 외의 다양한 생명체들 사이에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 인간이 그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다면 그들에 대한 주관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울 텐데, 다행히 인간에게는 그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책임분담이다. 다른 생명체에게는 없고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책임분담이다. 인간이 미완성 단계에서 출발하여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다해야 하는 것이 곧 책임분담이다.
책임분담은 인간 스스로 다해야 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누가 도와줄 수 없다. 신조차 그것을 간섭할 수 없다. 만일 신이 직접적으로 관여하거나 협조한다면, 이는 인간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신과 협동으로 한 것이 되거나 신이 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신의 도움 없이 인간 스스로 책임분담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신이 만들어놓은 창조원칙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은 인간의 타락을 막지 못하였다. 만약 신이 인간의 타락 행위에 간섭하여 이를 막아서려 하였다면,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인간은 신에 의해 조종당하는 로봇이나 꼭두각시인형이 아니다. 자신의 책임분담을 스스로 다할 줄 알기에 인간인 것이다. 결국 신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창조원칙 때문에 인간의 타락을 막지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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